• [칼럼] 정책은 책상 위가 아니라 현장에서 태어난다
  • ‘센스 메이킹’의 시대에 근거기반 정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얼마 전 한 기사를 읽었다. 의학뉴스(2025.11.15.)에 실린 “울산의대 조민우 ‘의료 정책, 과학적 근거 아닌 센스 메이킹이 좌우’”라는 제목의 기사이다. 이 기사에서 그는 의료 정책은 과학적 근거가 아니라 최종 결정권자의 ‘센스 메이킹’에 의해 좌우된다며, 복잡한 근거를 모두 읽기 어려운 결정권자가 “그럴싸하다”, “이해가 된다”고 판단하게 만드는 설명 과정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이 개념을 사용했다. 현실적 대안, 정치적 파급력, 행정적 실행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이다. 한국의 정책 환경에서는 이 과정이 근거를 ‘보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때로는 ‘대체’해버린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도 읽힌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며 지난 20년 동안 정책 현장에서 마주해온 장면들이 떠올랐다. 특히 보건의료 정책은 언제나 복잡했고, 그만큼 사람의 판단에 흔들리기 쉬웠다. 여러 전문가들의 견해가 이미 기정사실처럼 굳어져 있는 상황에서 근거 하나로 방향을 바꾸는 일은 더더욱 어려웠다. 그런 점에서 이 말은 낯설지 않았다.  

    그렇다고 조 교수가 말한 센스 메이킹이 불필요하다는 뜻도 아니다. 정책은 결국 사람의 결정으로 완성되기 때문에 ‘설명가능성’은 필수적이다. 정책의 효과를 사회의 언어로 풀어내고, 복잡한 행정·정치 시스템 안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형태로 구조화하는 작업 또한 중요하다. 근거만으로는 정책을 만들 수 없고, 센스 메이킹만으로 만드는 정책은 위험하기에 둘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정책학에서 말하는 정책형성모형으로 보면, 이러한 현실은 특정 하나의 모델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결정권자의 판단과 권력 구조가 작동한다는 점에서는 엘리트 모형의 모습이 보이고, 실제 의사결정이 정치적·행정적 제약 속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는 점증모형의 특성도 드러난다. 그러나 내가 현장에서 느낀 가장 현실적인 모습은, 이 둘을 대립적으로 보기보다 근거와 판단을 절충하여 ‘실행 가능한 최적의 선택’을 찾는 방식, 즉 최적모형(Optimal model)에 가깝다. 근거 기반의 합리성과 정치·행정적 수용성이라는 현실적 조건이 만나 정책이 만들어지는 지점이다.  

    현재의 한국의 정책결정 과정은 이 둘 사이의 건강한 긴장을 놓치고 있다. 의료기술 재평가를 하든, 일차의료 시범사업을 설계하든, 근거를 들고 테이블에 앉으면 늘 부딪히는 장면이 있다. 문제는 근거의 질이 아니라, 그것을 듣는 사람의 인식과 받아들이는 방식이 정책의 방향을 좌우한다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근거는 종종 ‘참고자료’로만 남고, 정책의 핵심 논리에서는 멀어지기도 한다. 물론 근거를 무시하자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면 정책연구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연구자를, 근거를 단단하게 준비하고 그 근거가 사회의 언어로 번역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그 문제를 둘러싼 복잡한 맥락을 정책 구조 속에 올려놓는 역할. 그리고 무엇보다, 특정 이해관계의 논리를 넘어 사회 전체의 편익을 고민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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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선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부연구위원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노인학과 초빙교수
  • 글쓴날 : [25-11-20 10:32]
    • 정선영 기자[annsy03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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