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달 전, 건강보험 시범 사업 평가를 주제로 한 자문회의에 참석했다. 그 회의는 “왜 이렇게 많은 시범 사업이 운영되고 있으며, 그것들이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의식 아래 진행된 연구의 일환이었다.
연구진은 2009년 신포괄수가제를 시작으로 2023년까지 총 37개의 건강보험 시범 사업이 운영되고 있음을 설명했다. 실제로 2023년 1월 4일 자 데일리메디 기사에서도 동일한 수치가 보도되었다. 연구진은 단순히 사업 수의 증가를 넘어, 이제는 시범 사업 자체를 평가하는 관리 틀이 필요하다며, 미국 CMS·영국 NICE·AHRQ 등의 사례를 참고해 새로운 공통·유형별 지표체계를 제안하였다. 이는 일종의 ‘통합 관리 프레임’을 마련하려는 시도였다.
연구진은 그 과정에서 미국 CMS, 영국 NICE, AHRQ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공통·유형별 의료 질 지표를 정리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평가 체계를 만들어가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시범 사업이 많아진 만큼, 관리와 거버넌스 차원에서 일종의 ‘통합 관리 틀’을 마련하려는 의도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 부분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자문 의견으로 그 이유를 서면 제출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나치게 세세한 지표 나열은 각 사업의 본래 목적과 로직을 흐리게 할 수 있다. 평가는 모든 사업을 동일한 잣대로 재단하는 과정이 아니라, 시범 사업 자체를 평가하는 “평가지표”라면 각 사업이 스스로 세운 목표와 근거를 드러내도록 돕는 ‘가이드’로 작용해야 한다.
둘째, 정부 정책에 기반한 시범 사업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왜 이 사업이 필요한가”, “어떤 근거와 로직에 기반하는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성과로 보여줄 것인가”를 명확히 설명하고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 보험료와 세금이라는 공공 재정이 투입되는 만큼, 평가지표는 단순한 수치 집계가 아니라 사업 주체가 책임감을 가지고 성과를 증명하도록 이끄는 방향타가 되어야 한다.
셋째, 환자 중심 지표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환자 만족도에 그칠 것이 아니라 건강 결과, 삶의 질, 돌봄 경험 등 실질적 성과를 보여주는 지표가 필요하다. 시범 사업을 평가하는 평가지표는 개별 사업 평가지표에 단순히 교육 횟수나 검사 수치 변화 같은 과정 지표를 포함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환자의 건강 결과, 삶의 질, 돌봄 경험 등과 같은 환자 중심성 지표가 반드시 포함되도록 지침서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시범 사업이 국민에게 실질적 변화를 가져왔는지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제안은 단지 평가 방식을 바꾸자는 차원이 아니다. 시범 사업 제안 및 수행 기관이 스스로 책임성을 가지도록 만드는 장치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애초에 자신(시범 사업의 주체)이 세운 로직모델과 성과지표에 따라 사업을 운영하고 그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면, 사업을 제안하는 기관은 훨씬 더 신중해질 것이며, 성과가 부족하다면 과감하게 종료할 수도 있는 “퇴로”도 열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제안은 단순히 평가 방식을 고치자는 차원이 아니다. 시범 사업 제안 기관이 책임성을 가지도록 만드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애초에 자신이 세운 로직모델과 성과지표에 따라 운영·보고해야 한다면, 기관은 훨씬 더 신중해질 것이며, 성과가 부족하면 과감히 종료할 수 있는 “퇴로”도 열리게 될 것이다.
사실 나는 이번 회의에서 처음으로 이런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니다. 2015~2017년 지역사회일차의료 및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 평가 경험을 바탕으로, 2018년 「근거 기반 보건의료 정책성과 평가 방안 연구」를 통해 로직모델과 성과 중심 지표를 결합한 정책성과 평가 실행모형(정책성과 평가 실행모형)을 제시한 바 있다. 이번 논의 역시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
결국 시범 사업은 제도의 발전을 위한 실험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각 사업이 합리적 계획을 제시하고 성과를 입증할 수 있다면 예산을 투입해야 하지만, 결과가 미흡하다면 과감히 종료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시범사업이 책임 있는 계획과 실행을 통해 제도의 발전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시범 사업은 국민의 건강과 의료체계 개선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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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근거기반 보건의료 정책성과 평가 실행모형(안)
출처: 김희선 외. 근거기반 보건의료 정책성과 평가 방안 연구 – 보건의료전달체계 기능강화를 위한 근거기반 정책 수립·평가 중심 –. 한국보건의료연구원; 2018. p.211